팝계의 피터 팬 클리프 리처드가 나타났다. 새로운 노래나 음반을 들고 나타난 게 아니다. 이번에는 예쁜 동화책을 들고 등장했다. 게다가 직접 어린이들을 위해 동화책을 읽어 주기까지 한다. 그가 이처럼 어느 해보다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직접 산타클로스가 되기로 작정한 이유는 올해가 바로 그가 가수로 데뷔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50년 전 하이틴 스타로 팝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그는 ‘영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며 전 세계 수많은 소녀 팬들을 웃기고 울리던 우상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가 없는 듯 이제는 고희를 앞둔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손녀 같은 어린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그가 만든 동화책은 성경 이야기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이야기 50가지를 골라 영국의 유명한 방송 작가 브라이언 시블리로 하여금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재구성하도록 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역시 영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스티븐 워터하우스가 그림을 그렸다. 글도 맛깔스럽지만 그림 또한 어린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성경은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지만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책이다. 어린이 성경책이 여러 종류 나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글과 그림이 뛰어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심지어는 어른들이 보는 성경책에 그림만 조금 그려 넣은 채 어린이 성경책이라고 판매하는 책들도 상당수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클리프 리처드가 데뷔 50주년 기념으로 펴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50가지 성경 이야기》는 그 의미나 수준  면에서 더욱 돋보이는 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의 특징은 클리프 리처드의 동화 구연이다. 3장의 CD 안에 담긴 클리프 리처드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능숙한 동화 구연 솜씨는 ‘과연 클리프 리처드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5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음악을 듣듯 그의 동화 구연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새 ‘영어’가 귀에 들어온다. 그래서 이 책은 동화책이지만 영어책이기도 하다.

  지난 1969년 청년 클리프 리처드는 열정적인 노래로 한국 팬들을 흥분시켰고, 5년 전인 2003년 이미 노년으로 접어든 클리프 리처드는 추억의 노래로 한국 팬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아름다운 동화책과 감미로운 목소리로 어린이들에게 꿈을 선물하기 위해 돌아온 셈이다. 이제 그가 어린이들까지 팬으로 확보하게 된다면 그는 정말이지 영원히 늙지 않는 살아 있는 피터 팬이 될지도 모른다.